[백석현의 환율 노트] 미국 연준의 존재감과 대선 관전 포인트
8월
초의 소동은 그냥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었나. 9월 첫 주 시장 분위기가 묘하다. 8월 초에 미국채 금리와 미 증시, 유가가 급락하고 엔화는 급등했는데, 9월 3일에도 같은 패턴이 나타났다. 반응의 강도만 약했을 뿐이다. 매월 발표되는 미국의 주요 경제 지표에
반응하며 시장이 리듬을 타는 가운데, 미국 연준이 방점을 찍은 고용이 점잖게 냉각될지, 급격히 악화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연준은 연말까지 매 회의
25bp 인하에 무게를 둘 전망이다. 향후 4년이 걸린, 두 달 앞 미국 대선은 어떨까.
상반기 내내 익숙했던 흐름과 달리, 하반기 금융시장은 다른 세상이다. 격동의 8월 초에는 역대급으로 쌓였던 엔캐리 자금이 급격히 정리되며 자산시장 전반을 뒤흔들었다. 8월 5일 일본, 한국, 대만 증시의 투매가 극에 달한 이후로는 시장이 금세 안정을
되찾고 글로벌 증시가 빠르게 회복돼 8월 말 시장은 평온했다.
엔화를 조달해 전 세계의 고수익 투자처에 흘러간 자금이 워낙 많았기에(엔캐리트레이드), 한 번 되돌림이 나타나자 그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쳤지만 이 움직임이 단기간에 일단락되면서
엔화도 안정을 찾았다. 다만 당분간 엔캐리트레이드를
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정확한 규모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역대급이었던
엔캐리 포지션은 대부분 정리됐다고 본다.
◆연준의 움직임과 달러화 동향
그런데 8월 초 시장이 한 번 뒤집어지자, 美 달러를 대하는 시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장참가자들이 전망을
재평가하고 전략을 재설정한 듯, 달러화의 하락 경로가 한동안 뚜렷했다.
이 과정에서 달러·원
환율도 크게 내렸다. 8월 2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저점(1,319.4원)은
7월 31일의 개장가(1,384.5원)보다 무려 65원 하락한 것이었다.
달러화가 하락한 데에는 美 연준의 역할이 컸다. 7월 말 FOMC 결과는 만장일치 금리 동결이었지만, 일부 연준 위원은 7월 말 금리 인하에도 열려 있었음이 의사록을 통해 확인됐고 8월 23일 파월 의장이 마침내 시장이 듣고 싶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금리 인하할 때가 됐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각에서
기대하는 50bp 인하에 대해서도 선을 긋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자신감이 커졌다며, 연준의 초점이 물가에서 고용으로 넘어왔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 한때 뜨거웠던 미국 고용 시장이 식고 있다. 특히 8월 2일 확인된 7월 비농업부문 고용(nonfarm payrolls) 보고서에서 신규
고용 11만 4천명은 예상(17만 5천명)을 크게 하회했고 실업률 4.3%도 예상(4.1%)보다 크게 높아졌다.
엔캐리 청산이 8월 초순에 사실상 일단락된 뒤 스포트라이트가
9월 첫 금리 인하를 앞둔 美 연준을 향하면서 BOJ(일본 중앙은행)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9월 하순(27일)에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 총재 선출로 새 일본 총리가 등장하겠지만, 그
자체로는 외환시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 하다.
9월 중 핵심 경제 이벤트는 9월 6일 저녁 미국 8월 비농업부문 고용(nonfarm payrolls)과 한국시각으로 9월 19일 새벽의 FOMC 회의다. 직전의
美 비농업 고용 발표(7월 데이터) 직후에는 고용 둔화 추세가
가속화 됐다는 심리로 美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고 미국채 금리가 급락했지만, 사후에 이 움직임은 일부
되돌려졌다. 허리케인의 일시적 영향으로 고용 수치가 왜곡되었을 수 있고, 상향 조정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美 고용 시장은 과거 경기 침체처럼 해고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이 둔화되는 수준이다. 따라서 시장 일각에서 기대하는
50bp 인하를 정당화할 만큼 나쁜 데이터가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이 경우 9월 FOMC를 볼 때 시장의 관심은
금리 인하 폭 자체가 아니라 점도표(dot plots)에 담길 향후 기준금리 전망을 향할 것이다. 그리고 연착륙에 가까운 최근의 고용 둔화 추세라면 연말까지 매
회의 25bp 금리 인하에 동의하는 시각이 많으리라 예상한다.
◆美 대선 레이스, 고전하는 트럼프
미국 대선 레이스는 이제 2개월 남았다. 7월 21일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재출마를 포기하며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 뒤 대선 판세는 급변했다. 위기 의식을 느꼈던 민주당은 후보 난립 없이 빠르게 결집해 해리스를 옹립했고, 일부 부동층(undecided voters)도
해리스로 향했다. 새로운 후보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른바 ‘허니문 효과’를 누린 것이다.
그리고 공화당 트럼프 진영의 바램과 달리, 허니문 효과가 곧 가라앉기는
커녕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며 여론조사에서 해리스가 박빙의 우위로 올라섰다.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문제 삼던 트럼프의 공세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트럼프는 해리스를 공략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대선 레이스가 접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경합 주(swing states) 승부가
치열해졌다. 미국 대선은 승자 독식 구조라서 각 주(state)에서
한 표라도 더 얻는 후보가 해당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기 때문에, 전체 득표 수는 뒤져도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 득표에서 트럼프를 압도(48.5% : 46.4%)했으나 선거인단 확보(232 : 306)에서
크게 뒤진 배경이다.
◆해리스 앞에 놓인 2개의 숙제
아직 2개월이 더 남은 상황에서는 무슨 일도 벌어질 수 있다. 해리스의 유세 현장마다 인파가 몰리며 흥행하고 ‘여자 오바마’라는 별명도 있는 해리스이지만,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에 출마하던 당시에
비하면 대중의 열광은 그리 뜨겁지 않다. 8월 22일 민주당 전당대회의 대미를 장식한 해리스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트럼프 비판에 열을 올린 것도 오바마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대선 후보 해리스에게는 2개의 중대 과제가 있다. 먼저 9월 10일(한국 시각 11일) 트럼프와의
첫 TV토론이다. 인터뷰에 능숙하지 못한 약점과 현재 미국
경제가 당면한 현실을 안고 싸워야 한다. 경제 둔화의 화살은 집권당을 향할 수 밖에 없기에 부통령인
해리스는 방어해야 하는 입장인데, 2008년 첫 출마 당시 야당 후보였던 오바마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반사 이익으로 작용했다. 바이든 정부 4년간 인플레이션은
20% 상승했고(올 7월까지. 트럼프 정부에서는 8%), 실업률도 상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합인 고통 지수(misery index)가
높아진 것은 부담이다.
해리스에게 두 번째 숙제는 중동 분쟁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아랍계·무슬림 미국인들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이 크고, 친(親) 이스라엘 여론이 우세하기에 이스라엘을 향한 미국의 지지와 무기
지원은 굳건하다(ironclad).
하지만 민주당에게 집토끼인 아랍계 미국인들의 분노를 달랠 수 없다면, 이들의
투표 참여가 감소해 경합 주에서 열세가 되기 쉽다. 실제 민주당
예비 경선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지지후보 없음’ 표가 속출하기도 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과의 균형을 모색하는 민주당과 달리 트럼프는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기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대선까지 휴전을 어렵게 만들며 시간 벌기로 일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 대선까지 휴전에 이르기가 어렵기에 해리스 표를 갉아먹기
쉽다. 여론 조사에 앞서고 있더라도 해리스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주식시장에서 미국 대선 수혜주의 주가 추이도 함께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해리스와
트럼프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문이 에너지 정책이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석유 등 화석 에너지 생산 확대
및 그린 뉴딜 정책 폐지를 추진하는 반면, 민주당은 청정 에너지 생산 확대를 지원하므로 민주당 수혜
주식은 재생 에너지, 전기차 등이다. 트럼프는 이민자 추방에
강경하며 총기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므로 공화당 수혜주는 민간 교도소 GEO그룹(트럼프의 강경한 불법 이민 반대와 국경 순찰 강화), 총기 업체 등이다. 최근 두 달간 이들 수혜주의 주가 추이는 바이든 하차의 결정타가 된 TV토론, 트럼프 피격, 바이든 하차 및 해리스 부상 과정에서 지지율의
변화와 대체로 궤를 같이 한다.